[책] 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 윤지관 옮김, 민음사, 2006.
분별력 있는 엘리너와 감정이 풍부한 메리앤이 겪는 사랑과 결혼 이야기.
제목 이야기: 이성과 감성
“센스 앤 센서빌리티”라는 제목의 영화나 드라마가 더 익숙합니다. 이성과 감성이라고 하니 무언가 이분법적인 기준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첫째 엘리너가 이성적인 모습을, 둘째 메리앤이 감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일상에서 엘리너와 같은 생각이나 판단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 보니 엘리너가 이해는 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고, 메리앤의 모습을 보면 나와 다르지만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모습이 더 멋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성은 엘리너, 감성은 메리앤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에 멈추기 보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엘리너는 과연 행복할까 – 에드워드의 동일성
에드워드 페라스는 먼 길을 돌아 엘리너에게 왔습니다. 엘리너 입장에서는 원하던 에드워드와 관계가 진전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에드워드와 과거 엘리너와 친분이 있던 그 에드워드가 같은 사람일까요? 혹시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상속권 박탈의 원인이었던) 전 연인 루시 스틸도 동생 로버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닐까요? 최소한 엘리너의 에드워드에 대한 마음이 그의 조건과 무관했다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엘리너에 대해 가진 마음도 그런 것일까요? 이것은 확신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만과 편견”과의 공통점
#1. 상속제도로 인한 피해
같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보니 “오만과 편견”과의 비교 및 대조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상속제와 관련된 피해에 얽혀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한사상속”, 즉 저택과 영지가 가문의 재산으로 묶여 남성인 자손에게만 상속되도록 되는 제도로 인해 주인공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이성과 감성”에서는 독신인 상속자가 조카(엘리너, 메리앤의 아버지)의 손자에게 전부 상속되도록 유언을 남겨 엘리너와 메리앤이 아버지 사망 후 작은 코티지로 이사를 하는 등 피해를 입습니다. 공통적으로 성차별적인 상속제도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2. 자매 서사
두 번째 공통점은 자매 서사라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첫째 엘리너가 이성적인 면모를, 둘째 메리앤이 감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우애가 뛰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오만과 편견”에서도 자매가 서로 존중하면서도 사랑하는 관계로 등장합니다. 첫째 제인이 오히려 정이 많고 모든 사람을 우선 좋게 보려고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고, 둘째 엘리자베스가 논리정연한 이성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오만과 편견”의 제인과 “이성과 감성”의 메리앤의 성격,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의 성격이 같다고는 할 수 없는 점이 등장인물의 성격적인 면에서 작은 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매가 서로 우애가 깊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3. 여행 중 병으로 인한 반전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하는 상황이 주요 인물의 병과 관련해서 발생합니다. “이성과 감성”에서는 메리앤이 열병을 앓는 바람에 자신의 곁에 있을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제인이 말을 타고 가다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빙리 가에서 묵게 되고, 등장인물들이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인간 감정이라는 공통 분모
다양한 소설의 모티프를 제공한 소설이면서, 그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누군가는 당시 시대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현대의 여성상과의 괴리에 몰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한 인간 감정과 이기심의 유사성에 주목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