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책]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 이혜림, 라곰, 2022.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 스토리. 한국 사회 안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살기가 얼마나 고달픈지, 그리고 어떤 실수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비교적 소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이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계속 나를 돌아보게 되어 더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떠오른 단어: “충만한 삶”

10년차 미니멀리스트의 단단한 미니멀 라이프 이야기. “충만한 삶”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필요 최소한으로 가진 것을 줄이다 보면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서 우리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결핍을 느끼는 순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확신할 수 있다. 가진 것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소유 물품 목록을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인가

나는 미니멀리스트 쪽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고급 차량이나 사교 생활을 겸하는 운동에도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술자리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특정 취미 생활이 내 소비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단단한 사고 체계를 기반으로 한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라면, 나는 그저 주머니가 가벼워서 소비를 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옷 정리: 미션 임파서블

저자처럼 옷 정리가 내게는 가장 어렵다. 하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저자와 달리 옷에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큰 관심이 없기도 하고, 나가기 위해 갖추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옷장에는 옷이 쌓여 있다. 체중의 등락도 큰 편이라 정장부터 캐주얼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헌 옷들이 있다.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어도 정리가 쉽지 않다. 올해의 새해 결심에도 옷 정리가 포함되어 있다. 계절이 바뀌면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정리를 하는데, 그 마저도 시간과 노력이 꽤 고통스럽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주인의식의 결여인 것 같다. 내가 옷에 관심이 없다 보니 어릴 때는 어머니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동생이 골라준 옷을 덥석 사 입기도 했다. 내가 고른 옷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른 물건보다 옷에 애착이 덜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미션: 책 정리

책 정리는 조금 다른 의미로 어렵다. 안 읽은 책들이 책장을 지배하기도 하고,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정리해서 중고서점에 팔다 보니 그 숫자가 200권을 넘었다. 책장에 꽂힌 책의 숫자가 확실히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장은 꽉 차 있고, 읽지 않은 책들과 애착이 있어 버리지 못하는 책의 비중도 상당하다. 결국 계속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책을 두고 어떤 책을 처분할까.

부부가 함께 하는 시너지

부부가 함께 한다는 대목이 가장 부러웠다. 부부가 성인이기도 하고 각자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 일치가 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지향점이라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혼자서 제자리 발버둥을 치는 꼴이 될 수 있다. 저자의 경우에는 서로에게 좋은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부부가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 가는 시너지 효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부 관계에서 그런 시너지를 내는 단계까지 가는 것 자체가 희소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

한국형 미니멀 라이프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다. 스스로 미니멀리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 좋았다. 남편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어쩌면 한국 사회는 관계가 거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10년 동안 겪어 온 미니멀 라이프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어서 그런지 공감이 쉽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집과 명품과 가전제품의 소유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가 쉽지 않은데, 단단하게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다른 이들의 선입견에도 당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내공이 느껴졌다.

(202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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