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씨앗에서 먼지로 – 마크 헤이머, 정연희 옮김, 1984BOOKS, 2025.
이해관계보다 앞서는 존재의 소중함
매력적인 웨일즈 정원사의 전반부 이야기
기적은 우리 눈을 피해 이미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웨일즈에 살고 있는 저자는, 캐시미어 댁 정원사로 살아갑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정원인 그곳에서 매월 식물과 꽃을 다듬어 냅니다. 식물들이 어떻게 자라고, 그 식물들을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저자의 세계관도 그려집니다. 채식과 독서로 인해서 배척받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는 매일 생명의 기적을 몸으로 접하며 자신답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생각을 잔잔하지만 다부진 필력으로 펼쳐냅니다. 매월을 단락삼아 길지 않은 글들을 묶어 봄에서 여름을 향해 가는 전반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매력이 조금은 떨어지는 후반부 이야기
아쉽지만 후반부의 매력은 전반부에 미치지 못합니다. 전반부의 매력이 너무 컸을까요? 400페이지의 분량에 제 집중력이 떨어진 것일까요? 매력적으로 보이던 저자의 표현이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짧은 글을 묶어서 매월을 표현한 구성도 통일성이 부족해 부산해 보였습니다. 저자의 탓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봄-여름으로 이어지는 생명력은 기쁘게 읽었으면서 가을-겨울로 향하는 부분에 제가 시들해진 영향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전반부에 강렬하게 전달되던 매력이 반감되는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삶도, 사람도, 책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느끼는 감정도 널뛰듯 했으니까요. 삶 자체도, 다른 사람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잘한 욕망을 투영하는 스스로를 봅니다. 10대 시절에는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기 위해 애썼는데, 지금은 가끔 움직이지 않는 감정을 더 움직이려 애쓰게 됩니다. 그 시점에 주어진 자기자신을 살펴 받아들이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전반부의 놀라움이 끝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숨은 기적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를 본받고 싶습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이니까요.
[책 속 문장들]
103-104쪽
우리는 서서 노란 꽃이 핀 들판을 바라본다. 내가 방랑자였을 때, 수도사처럼 꾸러미 하나만 짊어지고 떠돌던 그 시절에는 읽을 것이라고는 날씨와 풍경뿐이었다. 그때 나는 이 땅이 도서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 나무, 동물, 향기, 물, 바람, 그 전부가 책이었다. 각각의 소리, 각각의 온도, 피부나 맨발에 닿는 각각의 감각이 그 이야기의 일부였다.
168-169쪽
땅과 자연의 순환과 날씨에서 분리되어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에, 나는 나 자신의 필멸성에 대한 인식과,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감각에서 멀어졌다. 나는 때때로 생산하고 소비화도록 설계된 기계와 같았고, 내 행동과 태도는 오염되어 내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197쪽
죽음은,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 두면, 우리가 서로의 변하는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도 어떻게 기쁘게 잘살 수 있는지, 내 주위의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200쪽
몇 주째 피어 있던 철쭉과 진달래는 이제 시들어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에서 화려한 녹슨 빛깔로 변하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지금 여기’가 내 모든 관심을 빼앗는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거나 될 수 없다고, 혹은 내가 무엇이었고, 무엇이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로 내 삶을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링크] [책] 씨앗에서 먼지로 – 마크 헤이머 (교보문고)
[링크] [책] 주말엔 산사 – 윤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