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민음사, 2025.
아는 이야기에서 매번 느끼게 되는 짙은 여운.
어디에나 있는 지식의 함정
개울을 건너고 나면 징검다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개울을 건너려는 사람은 징검다리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징검다리가 중요한 이유는 개울을 건너기 위함이지만, 징검다리 그 자체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원래 목적을 잊게 되기도 합니다. 청년 싯다르타는 고타마가 경지에 이르렀음을 금방 깨닫지만, 그의 가르침의 끝에 자신의 해탈이 없을 것임을 강하게 느끼고 떠납니다. 반면 친구인 고빈다는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로 합니다. 고빈다는 고타마의 징검다리를 따라 가기로 한 셈입니다. 반면, 싯다르타는 번뇌의 강을 건너기 위해 속세라는 물에 자신을 던집니다. 우리도 “그저 따르기”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의 말만 듣고 잘 알지도 못하는 징검다리에 우리의 삶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머무름의 무게와 착각
속세는 싯다르타를 잠식합니다. 돈과 사업, 유흥, 그리고 카말라와의 삶은 수행으로 단련된 싯다르타조차 근심에 빠지게 합니다. 근심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던 그 순간, 싯다르타는 떠납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 내 것이 되고, 낯선 곳이 익숙해지는 순간 그 곳에 대한 집착이 자라납니다. 그 머무름의 무게를 뒤로 하고 싯다르타는 다시 깨달음의 여정을 떠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머무름’도 착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 내가 머무른다는 사실은 필연일까요? 5년, 10년, 더 긴 시계열로 바라보면 우리의 번뇌가 도사리고 있는 사회 생활, 인간 관계, 사는 곳 등 그 모든 것은 스쳐가는 시절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장 아픈 자리에서 자라나는 깨달음
싯다르타는 최선을 다 해도 아들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아들에게 갖게 되는 점도 깨닫습니다. 자신이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를 떠났듯이, 아들도 자신을 떠납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깨달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섭니다. 돌이켜 보면, 제 삶의 가장 처참한 순간에 깨달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가장 아프게 잃었던 그 순간에 역설적으로 몰랐던 소중함을 가장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건 공백기를 가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인간 관계도 정리됩니다. 뼈아픈 상실의 순간에 닿고 나서야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책 속 문장들]
P 70.
하지만 지식욕에 불타는 그대여, 덤불처럼 무성한 의견들 속에서 미로에 빠지는 것을, 말 때문에 벌어지는 시비 다툼을 경계하시오. 이런저런 의견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소.
P 71.
당신은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 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 다는 말씀입니다!
P. 172.
‘이제.’ 그는 생각하였다. ‘이 모든 덧없는 것들이 다시 나한테서 떨어져 나가 버렸으니, 이제 나는 다시금 옛날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백지 상태로 태양 아래 서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의 것이라고는 없으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런 힘도 없으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링크][책]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교보문고)
[링크][책]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