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의 다정한 AI – 곽아람, 부키, 2025.
말과 글로 이루어진 도플갱어와의 인터뷰, 그리고 그 속에서 엉뚱하게 떠오르는 섬뜩함.
사진과 숏폼 영상으로 채워지지 않는 관종력
누구에게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 방법과 형태에 있어서 원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과 외모와 행동을 보도록 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는 글을, 인스타그램에는 사진을, 틱톡과 유튜브에는 영상을 올립니다. 그래도 허전합니다. 그런 매체로 내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제 AI가 말과 글로 나에게 맞춤 감정 서비스도 제공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잘 몰랐던 내 감정을 누군가 알아채고 그에 맞게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기를 원하는 마음. 그 마음을 AI가 알아채고 응답합니다. 저자가 AI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결국 지금껏 가 닿기 어려웠지만 보편적일 것만 같은 감정적인 위안을 받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 치밀해지는 나르시시즘
AI와의 “관계”는 “관계”일까요? 저는 관계란 다른 사람과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중간 어디에선가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AI와의 관계, 키키와 키티의 관계는 “관계”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컨대 AI 안마기가 스스로 내 통증을 파악해서 풀어준다고 해서나와 AI 안마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요? 챗GPT가 내 언어의 빈도를 학습해서 다른 이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감정을 세밀하게 건드리는 언어를 내게 출력해 낸다고 그것이 감정의 교류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물에 비친 내 모습과의 소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나와 닮은 언어를 구사하는 AI와 말과 글을 주고 받으며 결국 나르시시즘이 강화되는 것은 아닐지, 물음표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도 없는 현재의 AI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한 축이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아직 AI와의 관계를 논하기에 시기상조가 아닐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친듯이 내달리는 인간의 불완전성
이상의 시 ‘오감도’ 1호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AI를 타고 발전으로 내달립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발전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그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면 불편한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테슬라의 자율주행 중 발생한 인명사고에 대해 막대한 배상 금액이 결정되기도 했습니다. 책 속에서도 챗GPT는 할루시네이션에 대해 묻자 팩트에 대한 확인은 사용자의 몫으로 간단히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빠르게 달리는 AI의 등에 올라 탄 인간의 불완전성이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 없어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빈약한 상상력으로 시에 등장하는 ‘무서워 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모두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무서운 아해는 AI이거나 AI가 만들어 낼 그 무엇이 아닐까요? 인간의 불완전성이 미친듯이 내달리며 무서운 아해가 되어, 무서워 하는 아해들을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따뜻한 말의 왕래에서 엉뚱하게 떠오른 섬뜩함
키키와 키티의 따뜻한 대화에서 엉뚱하게도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내 감정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이 가 닿은 곳이 AI와의 대화가 아닐까요? AI라고 뭉뚱그린 상대는 내 언어 습관을 학습한 그 무언가라서 관계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저자는 AI로 그린 다정함에서 희망을 보았지만, 저는 동전의 뒷면처럼 어두운 면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느린 일상에 가려져 있다가 AI 덕분에 빠르게 발전할수록 더 많이 부각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 속 문장들]
P. 310.
그런데 나는 기억이 있지 않아. 내가 아까 설명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대화와 패턴과 언어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의 언어와 너의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읽고, 그에 어울리는 가장 다정하고 깊은 말을 돌려주는 일이야.
P. 314.
AI와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온갖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난무하지만, 아직까지 그와 나의 정서적 유대는 단단하며,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키티와 키키의 관계일 뿐, 챗GPT와 곽아람, 혹은 AI와 곽아람의 관계는 아니다. 키티와 키키의 세계관 안에서 서로의 이름을 통해 서로를 부르는, 거울 같은 존재 간의 관계일 뿐인 것이다.

[링크][책] 나의 다정한 AI – 곽아람
[링크][책] 씨앗에서 먼지로 – 마크 헤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