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급류 – 정대건, 민음사, 2022.
밖에서 보면 잔잔해 보여도, 안에서는 와류인 우리네 삶.
단정해버리지 않는 지혜
거의 모든 것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사에 불변의 진리는 드물고, 악다구니로 쟁취한 것이 쓸모없이 느껴지는 날은 금방 다가옵니다. 과거에 용인되던 것들이 점차 금지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던 행동들이 지금은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자리잡기도 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부역하던 이들은 일본의 지배가 영원하거나, 최소한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나이를 먹으면서 단정하는 일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벌거벗은 채 껴안고 숨진 채 발견되는 해솔의 어머니와 도담의 아버지에 대해서 제3자가 가지게 되는 편견은 그렇게 강력합니다. 이렇게 거부하기 어려운 편견을 독자에게 부여하면서, 이 소설의 도입부는 시작합니다.
쉽게 꺼지지 않는 원망의 불길
원망의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고통스럽습니다. 불륜이 확실해 보이는 죽음 앞에서 죽은 사람들은 변명의 기회도 없습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유가족들의 삶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그 시선을 피할 방법도 묘연해집니다. 유가족들은 고인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도, 자신의 상처를 추스를 기회도 박탈당합니다. 자기 혐오와 고인들에 대한 원망의 불길을 스스로 삭이는 일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원래 건강했던 해솔과 도담의 관계도 그렇게 시들어 갑니다.
끝까지 미완성인 우리의 삶
해솔과 도담의 비틀거리는 관계는 우리 삶과 닮아 있습니다. 끝까지 완성은 없는 것만 같습니다. 그저 조금 더 책임질 뿐입니다. 10대의 풋풋한 만남이 좋아 보이지만, 그 관계가 영원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20대의 해솔과 도담은 그저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상처입은 새들처럼 느껴집니다. 30대의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책임지는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이제 보니 부상을 입으면 부상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저 보강운동을 하고, 부상 부위를 달래가며 달려갈 뿐입니다.
우리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큰 악령이 사라진 지금,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편견과 오지랖, 빠지기 쉬운 자기 혐오 등 공감의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38.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P. 195.
상처를 자랑처럼 내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가난한가. 나는 한 치도 변하지 않았구나. 도담은 익숙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P. 224.
하지만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해솔과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너무 납작하다고 도담은 생각했다.
P. 288.
그러나 안전거리를 둔다고 이별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저알 수 없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승주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승주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P. 293.
죽음. 모든 가능성이 종료되고 더는 회복할 수 없는 것.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게 삼켜 버리는 것. 창석은 그 무서운 것과 싸우던 사람이었다. 창석이 하던 일은 생명을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않도록 맞서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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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 정대건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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