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2025.
Veiller sur elle – Jean-Baptiste Andrea.
[일러두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형식 / 내용 상의 제한없이 작성하였습니다.]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프랑스 소설로, 2023년 공쿠르상 수상작입니다.
영혼의 형제
홀로 맡겨진 왜소증 수련공 “미켈란젤로”, 일명 미모와 오르시니 가문의 지적인 딸 비올라의 삶 이야기. 죽음을 앞둔 거장 미모 이야기와 어린 시절 미모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된 영상처럼 펼쳐집니다. 미모와 비올라는 모든 것이 다르지만 서로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영혼의 형제로 여깁니다. 미모는 미켈란젤로라는 거창한 이름이나 왜소증에 굴하지 않고 조각가로서의 자신의 재능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비올라는 지성을 무기로 귀족 가문이나 여성이라는 시대적 제약을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난관이 기다립니다. 이 영혼의 형제들은 서로 멀어지기도, 전보다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을 조각해 갑니다.
영화의 커트 전환 같은 페이지 바꿈
190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00년대 초반과 1960년대를 오가며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일목요연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지만, 시간대를 자주 옮겨 다닙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면서 페이지가 바뀌면 시대가 바뀌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영화감독 출신 답게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도전과 응전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시선으로 일상을 살아가는지, 어떤 도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린 셈입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해 감당할 시간은 언젠가 다가옵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가능성을 차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미래의 나만 위해서 현재의 내가 너무 소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언젠가 그 판단이 명확해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옛날 이야기 한 자락 같은 소설이지만, 읽고 나서 여운이 느껴집니다.
미술 좋아하세요? – 피에타, 수태고지
미모가 조각가인 만큼 미술도 이 소설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프라 안젤리코의 회화 “수태고지” 등 명작으로 꼽히는 회화 작품이 언급됩니다. 상대적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일종의 별명입니다. “프라”는 수도사를, “안젤리코”는 “천사같은”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미모는 왜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자 했을까요? 비올라는 왜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까요? 미술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이 소설을 조금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페이지 링크]
[링크] 피에타 – 위키피디아 (한글)
피에타 (미켈란젤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링크]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 위키피디아 (영문)
Annunciation (Fra Angelico, San Marco) – Wikipedia
[링크]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28)] 프라 안젤리코 (중) – 가톨릭신문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28) 프라 안젤리코(중) (catholictimes.org)
[책 속 문장들]
P. 140.
하지만 책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책들과 함께 우주가 확장되었다. 조각을 하다가 어느 결엔가 나의 행위가 외톨이의 것이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을 평생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 행위는 내 이전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정련되었듯이, 내 뒤에 올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그리되리라.
P. 247.
“네 완성된 작품이 살아 숨쉬는 모습을 생각해 봐.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낳을까? 네가 지금 작품 속에 응결시켜 놓은 그 순간의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려 보고 사람들이 그것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해야 해. 조각은 계시야.”
P. 258.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조각하는가가 아니야. 왜 그것을 하는가이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니? 그게 뭘까, 조각한다는 게?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 돌을 쫀다’는 답은 하지 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잖니.”
P. 579.
이제는 돌을 보아도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에게 털어놓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P. 613.
“잘 들어라. 조각한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야. 우리 모두, 너와 나 그리고 이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와 관련된 이야기, 훼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가닿을 때까지 켜켜이 덮인 사소한 이야기나 일화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 내는 거란다. 그 이야기에 가닿은 바로 그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춰야만 해. 이해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