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 김영민, 사회평론, 2026.
야심찬 제목의 내용이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 텍스트인 논어로 에세이를 이렇게 다량으로 써 내는 어려운 일을 저자가 해냅니다. 논어라는 텍스트 자체를 절대시하면서 자구에 매달리는 행위가 생각의 시체라면 그걸 묻는 행동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체계적인 해석을 위한 방법들도 비교적 쉽고 매끄럽게 설명합니다.
이게 되네, 논어 에세이
논어라는 옛 책에 대해서 에세이를 쓰는 힘든 일을 저자는 해냅니다. 오래 전 텍스트의 현재화에는 많은 품이 듭니다. 먼저 고고학적인 발견들을 모아 보아야 합니다. 판본 간의 우열을 가리되,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판본이 우세를 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발언의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상적, 시대적 맥락에 맞는 해석을 하기 위함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해석이 현재 독자들의 삶에 공감이 될 수 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자를 널리 알린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도 에세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에세이 내내 찰진 비유와 농담들이 종횡무진 계속됩니다.
인(仁) 언급의 깊은 뜻
논어에서 인(仁)이 언급되는 것은 공자의 뜻일까요, 아니면 제자의 뜻일까요? 저자는 논어에서 인이 100회 넘게 언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바로 공자가 생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인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의미일까요? 혹시 제자들이 공자님의 행적을 모으던 중에, 인에 대한 가르침 부분이 하이라이트가 된 것은 아닐까요? 이런 예만 보아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논어가 의미가 있으려면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텍스트를 너무 절대시하거나, 너무 텍스트 자체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논어의 뜻으로 새기는 것은 공자와 그 제자들이 당시에 뜻한 바에서조차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 뒤에서
친구나 연인,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도 오해는 분명히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가까이 지내는 사이에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아주 옛날 텍스트가 이제 와서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간의 해석에 따른 오해를 줄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우리 독자들은 한 발짝 뒤에서, 당대의 지식인 중의 한 명인 저자가 “직조”하는 논어의 세계가 얼마나 “명징”한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속 문장들]
P. 65.
정치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피하며 핵심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정치공동체란 일종의 해석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유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동원되는 언성은 높아지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과 과장에 의존하게 된다.
P. 102.
공교롭게도 「논어」「옹야」10에도 공자가 나병환자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 역시 나병에 걸린 환자에게 손을 대기는 댄다. 그러나”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하는 대신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이 런 병에 걸리다니!”(斯人也, 而有斯疾也, 斯人也, 而有斯疾也.) 그러고 끝이다.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한 예수의 행적을 상기한다면, 맥 빠지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아픈 이를 고치기는커녕 한탄이나 하고 말다니. 「논어」는 불타는 무능의 기록이다.
P. 106.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배고프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있어도 누군가 밥을 짓지 않으면 굶주림이라는 난관은 타개되지 않는다고. 인간은 생각보다 게으르다고. 보통 사람들은 사채를 빌리지 않는 한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공자는 사채 빚 없이도 삶 속에서 분투한 사람이었다.
P. 151.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한다!”(吾免夫)고 기뻐 날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함을 ‘안다”(吾’知’免夫)고 말한다. 즉 삶의 긴장, 구속, 고단함을 면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그 사실 자체를 메타 시선으로 바라보아 ‘안다'(知)는 선언이다.
P. 172.
최근 연구에 따르면, 40대 이상에게는 주 3일 근무가 적절하다는데, 이 모든 삶의 책임을 혼자 지려면 주 3일 근무가 아니라 주 3일만 살아 있는 게 적당할지 모른다. 주 7일간 다 살아 있으려면 당사자, 가족, 사회, 국가가 어떻게든 삶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P. 191.
적어도 비숍이 보기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 연중행사의 성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거둥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거둥 이외의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데 있다. 마치 모든 사람이 흑백 티브이를 볼 때에야 비로소 컬러 티브이의 색상이 태양처럼 빛나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이 단조로운 외관을 하고 있어야 비로소 거둥의 스펙터클이 가진 화려함이 빛났던 것이다.
P. 206.
재현은 실증이 아니다. 재현은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
P. 245.
자신을 제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시장을 잘 아는 일만큼이나 자신을 잘 아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을 알아야 그에 맞는 상대를 찾지 않겠는가. 자기가 자기를 잘 안다는 법은 없다. 자신을 ‘사줄’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 발견한 자신은 종종 시장 속의 자신이다. 자신의 상대적 가치는 해당 시장의 현황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일수록 시장에서 가격은 낮고, 아예 유일무이한 사람은 시장 가격을 설정하기가 어렵다.

[링크]
[링크][책]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 김영민 (교보문고)
[링크][인문] 논어: 김영민 새 번역 – 김영민
[링크][인문]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 장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