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2009.
처음 접한 작품을 읽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은 낯섭니다. 그래도 10km 러닝은 해 본 적이 있어서 저자의 설명이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달리기를 소홀히 한 몇 년 동안 체중은 늘고 근육은 줄었으며 관절은 굳었지만, 조금씩 다시 달릴 준비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직 낯 가리는 하루키씨
엄밀히 말하면 제가 하루키 작품에 아직 낯을 가립니다. 처음 읽은 책이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라는 절판된 단편집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하루키에 대한 관심의 끈이 끊겼습니다. 당시에는 재미도 의미도 찾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고 하루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분들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른 작품을 읽고 하루키에 대한 극찬을 쏟아내는 분들에 대한 저의 이해의 폭이 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몇 년 전에 1Q84를 재미있게 읽어서 거부감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대표작들 대부분을 접하지 못한 터라, 아직 낯가림 중입니다.
익숙한 달리기의 기억
낯 가리는 하루키 씨와 공통 화제를 하나 찾아낸 기분입니다. 재수생이던 시절, 학원 일정을 마치고 동네 한 바퀴를 뛰면서 열을 식히곤 했습니다.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소속이 없는 상황은 똑같이 지내는 24시간에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뛰다가 지치면 걷고, 걷다 숨이 돌아오면 뛰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짜증도 줄었습니다. 하루키처럼 수십 년을 일관되게 뛰거나 마라톤 풀 코스, 또는 철인 3종 경기에 나서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이야기 중에서 알아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이성을 소개받으러 나간 어색한 자리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나마 찾아낸 것처럼 다행스러운 기분입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기분 탓
저자는 pain과 suffering을 구별합니다. 달리다 보면 고통은 늘 있지만 그 고통으로 달리기를 중단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달리다 보면 고통은 늘 있는 일이지만, 그 고통을 얼마나 크게 느껴서 달리기를 중단하는지 여부는 역시 각자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일상에서 러닝으로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나면, 내일 다시 이어 달릴 힘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서 기분을 평정 상태까지 올려 두는 일이 그래서 중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동네 산책로를 걸으며 달리기 준비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45.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 57.
얼핏 보면 일리가 있는 사고방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당시 내가 전업 작가로서 살아남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충고를 따를 순 없었다.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P. 107.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아, 힘들다.
P. 184.
그리고 지금, 무척 길게 지속된 ‘러너스 블루’ 의 안개를 나는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뭔가 새로운 시작이 있는 듯하다. 아침에 조깅을 위해서 러닝슈즈를 신을 때의 그 희미한 태동을 감지 할수 있다. 내 주위에서, 그리고 내 안쪽에서 그런 공기가 확실 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 작은 새싹을 주의 깊게 키워 나가고 싶다. 기척을 놓치지 않도록, 광경을 놓치지 않도록,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나는 나 자신의 신체를 향해 신경을 집중한다.
P. 221.
그러나 실제의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 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링크][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 교보문고
[링크][인문] 외로움의 책 – 다이앤 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