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 삼촌 – 손상규 연출, LG아트센터 제작, 이서진, 고아성 외 출연, 2026.
연극에서도 빛나는 이서진 님의 투덜거림. 전체적으로 연출과 탄탄한 연기에 약간의 낯섬이 있는 기분 좋은 연극 관람이었습니다.
남 탓의 미학
내가 못난 것은 부모 탓입니다. 보다 나은 유전자가 조합되었다면 보다 흠 없는 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업무에 능숙하지 못한 것은 밀어주지 않는 회사와 상사 탓이며, 내가 승진하지 못하는 것은 내 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못난 부하 직원들 탓입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 탓이며, 신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는 것은 성직자와 신도들 탓입니다. 내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나라는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홀대하는 세상 탓입니다. 아니요, 다 거짓말입니다. 다른 사람 탓은 쉽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고, 이 세상의 잘못된 것들은 이리저리 책임을 싹싹 밀어냅니다. 바냐 삼촌의 주인공은 바냐는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는 평생 뼈빠지게 뒷바라지한 제부의 무능력을 너무 늦게 알아챘습니다. 그 허무감은 그를 술과 불평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능에서 선보이는 “투덜거리면서 결국 다 하는” 이서진 님의 캐릭터에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에 그를 일종의 아군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나영석 PD 예능과 닮은 (P)
익숙함에 신선함 한 스푼. 이 작품은 이서진 배우가 출연한 나영석 PD 예능과 닮아 있습니다. 바냐와 소냐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단단하고 완성도가 높습니다. 바냐 역 이서진 님과 소냐 역 고아성 님의 연기는 부족한 것 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이서진님의 바냐가 평생 농부로 제부를 뒷바라지 한 인물일까요? 완전히 몰입이 되지는 않습니다. 고아성님의 소냐가 선보이는 섬세한 감정선을 온전히 몰입하며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원작 자체에서 소냐의 감정선이 비교적 덜 다루어졌기 때문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단단한 연극에 신선함 한 스푼 얹은 느낌이어서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도 안 멋진 우리의 행복
어쩌면 마지막 신의 감정선은 제가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링크된 연합뉴스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바냐와 소냐가 일상으로 돌아가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언제 행복했을까요? 행복은 어쩌면 사건 사고처럼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씨를 심고 싹을 틔워 가꿔서 얻는 열매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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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뉴스] 첫 연극 무대 오른 고아성 “잠꼬대로 독백할 정도로 몰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