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탁월한 피해자 – 곽아람, 생각의 힘, 2026.
스토킹 피해자, 현행 형사 사법 절차 속에서 살아 남기에 도전하다.
피해자로 살아남는다는 것
유력 일간지의 기자인 저자가 당한 스토킹 범죄와 그 사법처리 과정에서 느낀 이야기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스토킹을 하고, 재판을 통해 법정 구속이 되어 교도소에서도 그 스토킹을 멈추지 않는 가해자. 처음에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한 이 사건의 사법 절차 중에 사법 시스템의 허점들에 의해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지 서술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형사 사법 절차 자체가 피해자보다 (직접 경험자이다 보니) 가해자가 허점을 더 잘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점, 형사 사법 절차에서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법원은 무심하고 검사와 변호사는 법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향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가해자 인권 보호냐 피해자 보호냐
안전수칙은 피로 씌어진다고들 합니다. 그만큼 인명 피해를 겪고 나서야 안전수칙 및 예방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는 (어지간한 흉악범이 아니고서는) 모자이크 뒤에 있기 쉽고, 피해자의 신원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기 쉽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해자의 이름 혹은 가명을 딴 법령을 새로 만들고는 잘 된 대응이나 업적처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형사 사법 절차가 이렇게 허점이 많다면 차라리 피해자가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까지 합니다. 저자는 절차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본인이 피해자인 형사 사건의 기록조차 열람하려면 멀어도 직접 가서 열람 및 복사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그나마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가해자가 영상과 글로 가해 의사를 해서 형사 처벌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보복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저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정서 제출 및 사법부, 검찰, 경찰에 호소하는 일 밖에 없음에 좌절합니다.
탁월한 피해자: 취재가 시작되자
제목인 “탁월한 피해자”는 피해자 중에서 자원이 많은 축에 속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즉, 저자가 법적 지식도 있고, 유력 일간지 기자라는 확실한 신분에 경제적으로도 자원이 부족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 처리 과정에서 전혀 신속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빈틈을 경험합니다. 누군가의 의도가 섞이지 않았을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방심, 누군가의 태만이나 실수로 인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결국, 저자는 동료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기사화하고,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일부” 바로잡는 데에 성공합니다. 결국 피해자로서의 저자보다 기자로서의 저자가 “취재가 시작되자”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한 셈입니다. “탁월한 피해자”인 저자도 생명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런 수단을 갖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일상이 회복될까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책 속 문장들]
P. 70.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국가가 피해자를 대리하는 것만으로 사건이 매끄럽게 해결되어야 한다. 국가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 줘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상당 부분 피해자에게 전가된다. 검찰에 증거도 제출해야 하고,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의견서나 탄원서를 쓰는 주체도 피해자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을 경우 이의신청서도 피해자가 써야 한다.
P. 71.
당사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건의 주체로서 인정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는 주변부 로 밀려나고 약자라 무시당하며 자주 잊힌다. 형사사법 시스템 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이는 피해자다.
P. 135.
나는 끊임없이 내 고통의, 내 분노의, 내 불만의 정당성을 의심했다. 괴로움에 울부짖으면서도 내 감정을 검열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해지기 위해 습관적으로 에너지를 썼다. 그러다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편견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흔히 막무가내로 울고, 달려들고, 원망하고, 감정을 분출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 145.
장애인, 이주민,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인 피해자를 오랫동안 대리해 온 김예원 변호사는 산문집 《사람을 변호하는 일》에 이렇게 적었다.
현재 한국 형사소송법상 피해자는 형사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 형사사건의 당사자는 피고인과 검사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그저 하나의 증거에 불과하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 절차에서 소외되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에 노출되는 피해자들은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다.
P. 159.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자가 재량을 갖고 선택가능한기사를 쓸 때, 그리고 그 기사가 취재원에게 이득을 줄 때, 기자들은 말한다. 기사를 ‘써 준다’고. 그런 기사에 대해 취재원이 불만을 표시하면 으레 이렇게들 말한다. “실컷 기사 써 줬더니, 고마운 줄도모르고···”
대중의 시각에서 피해자 보호는 법원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판사의 시각에서 피해자 보호는 법원이 ‘해주는’ 일인 거구나. 그 간극에 슬픔과 절망감을 느꼈다.
P. 363.
나의 재판은 이미 정의롭지 않았다. 재판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누구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일이 많았고, 누군가 지쳐 있었으며, 누군가 귀찮아했고, 누군가 나태했으며, 누군가 무관심했고, 누군가 무성의했고, 누군가 무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정에 악의가 없다고 해서 결과가 악이 아닌 것은 아니다.
P. 373.
사법3법이 모두 통과된 날 밤, 거실에 앉아 감자튀김에 콜라를 곁들여 마시며 TV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왜이 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데 피해자 입장은 반영되지 않는 걸까. 피해자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몇몇 언론이 피해자에게 끼칠 악영향을 보도했지만 구색 맞추기처럼 보였다. 실제로 피해자가 얼마나 피가 마르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제3자의 시선에서 똑똑한 척하며 수많은 기사를 썼다. 그 뒤에 숨은 이들의 눈물은 기사의 성립 요건을 충족시킬 정도로 인용하되 되도록 감정이입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안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피해는 공정하게 오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일어나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링크][책] 탁월한 피해자 – 곽아람 (교보문고)
[링크][과학]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크리스 나이바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