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체호프 희곡선 – 안톤 체호프, 김혜란 옮김, 민음사, 2026.
인간사의 맥을 정확히 짚어 내는 저자의 탁월한 솜씨. 그 덕에 100년 넘게 이어지는 짙은 호소력.
누가 가족인가: 바냐 삼촌
남보다 못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나쁘다면 좋지 못한 친구 관계를 끊어내듯 끊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 어렵기도 합니다. 바냐 삼촌 작품 속에서 바냐와 소냐의 가족은 누구일까요? 미국 드라마에서 보게 되는 가족보다 친한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는 픽션이나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 관계가 끊기거나 없는 관계가 더 가족에 가까운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기도 합니다. 바냐와 소냐에게 옐레나와 아스트로프가 여전히 가족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관계는 주어진 조건보다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집니다.
예술가 또는 예술의 죽음: 갈매기
일상과 경험이 없으면 예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건이 생기고 감정이 뛰놀며 그 포착한 감정이 음악이, 미술이, 그리고 문학이 되기도 합니다. 실패한 사랑의 처절한 경험이 없었다면 예술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을지 끔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 작품들은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 살아 남은 자들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콘스탄틴 트레블료프의 예술가로서의 성공과 출세는 그의 사랑이 지독하게 실패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갈매기는 죽어있었던 것일까요?
변화와 적응 실패기는 어쩌면 클리셰: 벚나무 동산
시험을 앞두고 청소를 시작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준비 기간을 회피하면서 시간을 보낼 방법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소중하다고 외치지만 정작 벚나무 동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없습니다. 일종의 작은 무도회를 하면서 경매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현재의 우리 모습이 투영됩니다. 중요한 업무는 미루기 쉽고, 쇼츠는 끊임없이 자극을 쏟아 냅니다. AI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고민은 멀기만 합니다. 결국 피하는 곳에 낙원은 없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57.
내가요? (어깨를 으쓱하며) 음… 당신은 명성과 행복, 그리고 뭔가 빛나고 흥미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시는데, 미안하지만, 나한텐 그 멋진 말들이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마멀레이드처럼 들리는군요.
P. 61.
무슨 성공이요? 나는 한 번도 내가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어요. 나는 작가로서의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일 안 좋은 건, 마치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때가 자주 있다는 거죠.
P. 214.
의사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그 열정과 격정들을 존경합니다. 다만, 작별 인사로 이 노인이 한마디 얹겠습니다. 여러분, 일을 하셔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P. 221.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P. 244.
그래요. 잊혀질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죠.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본질적이고 의미 있고 중대하게 여겨지는 문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거나 중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P. 337.
다 좋은데, 전체적으로 뭔가 진지하지가 않아. 죄다 이상적인 얘기뿐이고, 진지함이 부족해. 어쨌든 진심으로 처제가 잘되길 바래.

[링크][책] 체호프 희곡선 – 안톤 체호프 (교보문고)
[링크][연극] 바냐 삼촌 – 손상규 연출
[링크][문학] 사랑에 대하여 – 안톤 체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