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암호 해독자 – 마이자, 김택규 옮김, 민음사, 2026.
우리가 동시대의 재능을 소비하는 방식, 그리고 인공지능.
우리가 재능을 소비하는 방식
재능은 늘 관심과 질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 결과 발표 시기에 최고 득점자보다 최연소 합격자가 더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어린 천재들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그들이 소문의 주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독이 되기가 더 쉽습니다. 억지 영웅담으로 비행기 태우는 매체의 관심은 결국 추락을 예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IQ가 높다고 언론의 이목을 끌던 분들 중에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사람들에게 실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수많은 천재들이 너무 영리해서 대중에 대한 노출을 꺼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주인공 룽진전도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는 바람에 국가기관에 발탁되는 일종의 불운에 노출된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차에 큰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차에 관심이 많아서 좋아하는 차를 소유했다면, 하다못해 새의 배설물이라도 차에 떨어지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재능이 크지 않아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룽진전처럼 재능이 탁월해서 오히려 선택권을 잃는 상황에 처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일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탁월한 재능은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까요? 국가를 위해서 사용한다고 하면 정당화될까요? 지도했던 교수의 희망처럼 미국 유학길에 올라 뇌과학에 전념했다면 룽진전의 재능을 세상에 도움이 되게 사용한 것일까요? 저는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그 회사와 직종에 종사함으로써 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의 직장생활이 과연 정말 이 사회에 기여했을까요? 대체로 그렇다고 믿지만, 여전히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암호 해독자 시대의 폐막과 인공지능
암호 해독자에 대한 소설을 읽으며 사실상 인간에 의한 암호 해독이 가능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과연 인간이 만든 암호 중에 인공지능으로 풀 수 없는 것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대중에게 인공지능 사용이 보편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국가 정보 기관의 효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집단 지성보다 고도의 인공지능이 더 효과적이거나 앞으로 효과적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국가기관이 룽진전에게 하고 있는 일을 지금 각 국가가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암호 생성과 해제에서 더 위험한 인공지능 간의 경쟁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전이나 그 전임자처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과 부작용들은 개인에게 감당하도록 맡겨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저자가 그리고 있는 기술 경쟁의 어두운 면을 이미 인공지능 경쟁에서 목격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 위험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책 속 문장들]
P. 207.
현재 암호업계에는 과학자들이 운집해 있다. 누구는 암호도 과학이라고 인정하고 적지 않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암호 개발에 헌신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암호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 경험과 지식에 비춰 보면 암호를 만들든 해독하든 암호의 본질은 과학과 문명에 반한다. 그것은 인류가 과학과 과학자를 독살하는 음모이자 함정이다. 물론 암호에는 지혜가 들어 있지만 악마의 지혜여서 인류를 더 간교하고 사악하게 만들 뿐 이다. 암호에는 도전 정신이 가득하지만 쓸모없는 도전 정신이어서 인류의 진보와는 전혀 무관하다.
P. 223.
“암호 개발자의 원칙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역사를 무시하는 걸세.” 하며 나는 반박했습니다. “역사와 단절되려는 그런 공통된 바람이 바로 연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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