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비야의 건달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박철 옮김, 민음사, 2026.
세르반테스의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의문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진실이 희미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은 요지경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작고 희미한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이 시작됩니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라고 합니다. 눈치와 센스를 찾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화의 언어 자체보다 대화의 맥락에 내용이 더 많이 기대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학생 부친의 직업을 묻는 대화의 언어에서 머물지 않고, 학업에 분발하도록 촉구하고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이 소설도 제목의 언어가 작품 전부를 관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의 작품인 “세비야의 건달들”, “유리 석사”, “개들의 대화”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단편집 “모범소설”에서 골라 뽑았다고 합니다. 소설이 도덕적 모범을 제시한다는 제목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리둥절합니다. 하지만 제목이 무엇이건 간에 그 안에서 삶의 진실 한 스푼을 찾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세르반테스의 글에서 풍자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요? “세비야의 건달들”에서는 훔친 물건을 부패 경찰이 찾을 때 돌려주었다고 이름 앞에 “착한” 칭호를 수여합니다. “유리 석사”에서는 자기 몸이 유리로 변했다고 믿는 사람에게 세상 사람들이 찾아와 질문 세례를 퍼붓습니다. “개들의 대화”에서는 개들의 입으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야기합니다. 착함의 기준은 이미 훔친 물건을 되돌려 주는 데에서 사용되고, 자기 몸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 합니다. 개들의 눈으로 본 일상은 사람들이 서로 속고 속이며 해악을 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대의 삶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그 삶 속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저자의 글을 읽으면 제3자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피어오르는 기적
망치를 들면 못 머리만 보인다고 합니다. 그저 흘려 보내던 일상도 기록하면서 작은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우리가 가진 일상의 감도도 올라가지 않을까요? 제목은 이상해도 의미심장한 이 단편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오늘의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삶으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기적이 나를 뒤흔드는 것보다, 일상의 작은 기적이 많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책 속 문장들]
P. 77.
그는 모니포디오의 수첩과 온갖 부정한 일거리들을 떠올리며 세비야라는 유명한 도시에서 정의가 얼마나 방치되었는지를 과장되게 탄식했다. 이 도시에는 자연의 이치에 반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 거의 드러내놓고 살고 있었다. 린코네테는 동료에게 이런 타락하고 부패하고 불안정하고 방탕한 삶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권하기로 결심했다.
P. 100.
“도밍고, 사바도가 지나기를 기다리게.”
P. 134.
자네가 하는 말이 다 이해돼, 시피온. 그리고 자네가 그렇게 말하고 내가 그걸 이해한다는 사실이 나한테 새로운 감탄과 경이로 다가오네.
P. 152.
“보호자들이 공격하고, 보초가 잠들고, 믿는 자들이 도둑질하며, 지켜야 할 자가 도리어 죽인다는 사실을 누가 알릴 수 있을까요?”
P. 240.
진리에 도달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것에서 멀어져 다시 산을 오르며 시시포스처럼 내 노동의 돌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링크][문학]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링크][인문] 논어: 김영민 새 번역 –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