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 2025.
역시 톨스토이는 중단편도 재미있게 잘 씁니다. 세상에 원래 그런 일은 없으니, 어차피 겪을 일이라면 이제 그만 팔짱을 풀고 일상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상책일 것 같습니다.
장편도 잘 쓰면서 중단편까지 잘 쓰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중단편집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홀스토메르”,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주인과 일꾼”, “항아리 알료샤”가 실려 있습니다. 각각 분량도 다르고 이야기의 톤도 다르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서늘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물론, 너무 도덕을 주입하나 싶기도 한 대목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생활과 일상에서 저도 느낀 부분을 서늘할 정도로 잘 짚어 냅니다. 수천 페이지짜리 장편소설만 잘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중단편에서도 저자 특유의 한 방을 드러냅니다.
원래 그런 건 없어
이 중단편에서는 제3자의 시선을 유독 자주 내세웁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천사”의 시선, “바보 이반”에서는 잔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이반의 시선, 그리고 “홀스토메르”에서는 사람들의 소유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의 시선도 등장합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의 모순점을 쉽게 짚어냅니다. 문서 작성자는 아무리 검토해도 보이지 않지만, 검토하는 상사에게는 오타가 바로 발견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직 후 출근한 회사의 기존 업무 방식에 대해 질문할 거리가 많습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하면 늘 돌아오는 대답이 있습니다. “그건 원래 그렇게 하던 겁니다.”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더 바람직하고 덜 바람직한 방법만 있을 뿐입니다.
어차피 팔을 꼬는 거라면 내 방법대로
화를 자초할 때 스스로 팔을 꼰 것으로 비유하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살면서 팔이 꼬일 거라면,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고 그 결과로 아픈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만 보다가, “원래 그렇게 하던 거”라면서 다른 사람이 하던 방식을 아무 생각없이 이어 가다가 실패하면 더 억울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제 팔짱 끼고 앉아서 생각만 해 보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집니다. 팔짱을 풀고, 일어나서 제 생각대로 부딪혀 보려고 합니다. 그게 바보 이반이, 홀스토메르가, 그리고 “항아리 알료샤”의 알료샤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책 속 문장들]
P. 76.
“바보야,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차르의 딸을 고치러.”
“하지만 너한테는 병을 고칠 수단이 없지 않느냐?”
“뭐, 괜찮아.” 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을 몰았다.
이반이 차르의 궁전에 도착해 출입구 계단에 발을 딛자마자 차르의 딸은 깨끗이 나았다.
P. 97.
다만 그의 왕국에는 한 가지 관습이 있다. 두 손에 굳은살이 있는 사람은 식사 자리에 낄 수 있고, 굳은살이 없는 사람 은 남들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P. 118.
그는 늙었고, 그들은 젊었다. 그는 여위었고, 그들은 기름졌다. 그는 울적했고, 그들은 명랑했다. 그 때문에 그는 완전히 낯선 남이고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들이 그를 동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들은 자신만을, 그리고 드물게 자기 모습을 쉽게 투영해 볼 수 있는 말만을 동정한다.

[링크][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톨스토이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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