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건 – 아니 에르노, 윤석헌 옮김, 민음사, 2026.
망각과 기록 사이에서 기록으로 살아남다.
글쓰기로 나의 삶과 마주하기
우리는 삶에서 여러 사건들에 휘말립니다. 직접 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일으킨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리게 되기도 합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방향은 내가 혼자 정할 수 없지만, 나의 태도는 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 사건과 마주할 것인가? 저자는 정공법을 택합니다. 무서워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글쓰기로 나의 삶과 마주한다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부터도 일기를 쓰면서도 자꾸 자기 검열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의 일을 관찰자로서 직면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 자체가 놀랍기까지 합니다.
낙태: 현재 진행 중
1940년생 작가가 1960년대에 겪은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2026년 현재도 여전히 문제적이라는 점이 뼈아픕니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자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2026년 현재 더 나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의료적,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난제여서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척지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일까요? 정상적인 토론이나 논의가 진전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억해야 할 사건
가슴 아픈 사건일수록 더 정확히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의 고통이 현재의 평온한 마음을 뒤흔들더라도 거울 앞에 설 필요가 있습니다. 망각은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잊힐수록 사건의 가르침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으로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꺼내어 대중 앞에 서는 용감한 선택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용기있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제 삶의 가슴 아픈 일들에 대해서 한 번 적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37.
이제 ‘관념의 하늘’에는 다가갈 수 없어 보였고, 나는 구역질이라는 진창에 빠진 내 육신을 그 아래로 질질 끌고 다녔다. 어떤 때는 내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그런 것들을 사유할 수 있길 바랐고, 또 어떤 때는 내가 습득한 지적 성취가 내 안에서 이미 완전히 무너져 버린 허울뿐인 구조물이었다고 생각했다.
P. 89.
나는 삶과 죽음, 시간, 도덕과 금기 그리고 법에 관한, 내게는 총체적인 인간 경험으로 보이는 것을 마침내 말로 옮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통해 겪어 낸 그 경험을.

[링크][책] 사건 – 아니 에르노 (교보문고)
[링크][책] 색, 계 – 장아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