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바라모 – 세사르 아이라, 권미선 옮김, 민음사, 2026.
시점과 퇴고에 대한 저자의 도전장.
어서 오세요 문학 실험실
저자의 문학적 실험이 담긴 소설입니다. 기존 문학, 기존의 소설에서 필수 요소로 여겨진 부분을 의식적으로 어기면서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즉, 과연 기존 소설 작법상의 필수 요소들이 정말 필수불가결한지 작가는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도전은 크게 시점과 시간으로 나뉩니다.
소설의 시점에 대한 도전
이 작품은 공무원 바라모가 자신의 급여를 위조 지폐로 받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에 비해 화자의 의식을 주로 따라가는 서술 형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진행이 느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작가로서 독자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바라모를 주인공으로 하는 3인칭 소설일까요, 작가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1인칭 소설일까요? 사실은 그런 분류가 편의를 위한 분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주관적인 서술도 객관적 사실을 일부 포함할 수 밖에 없고, 객관적인 서술도 주관적인 판단을 어떤 형태로건 포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객관적 서술이나 주관적 서술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작품이 반드시 한 가지 시점을 끝까지 관철해야 할까요? 그것이 소설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자유 간접 화법”이라는 도구로 시점에 대해 도전장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작가의 시간에 대한 도전
퇴고는 글쓰기의 기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퇴고를 하다 보면 원래 작가가 가진 생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엄밀히 말하면 퇴고는 작가의 시간에 역행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퇴고에, 작가의 시간에 도전장을 냅니다. 이 작품은 시간의 속에서 저자의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즉, 부가 설명이 필요하거나 이야기 전개상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나 설명을 추가하고, 시점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합니다. 되돌아가서 퇴고를 하기보다 이야기를 덧붙여서 끌고 나갑니다. 이렇게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살리면서, 퇴고로 훼손될 수 있는 작가의 시간의 흐름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과연 퇴고는 반드시 필요한가, 작가의 시간과 생각의 흐름을 유지할 수는 없는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이렇게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도전에서 저자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저는 여전히 완성도 높은 글을 위해서는 작가의 시간이나 생각의 흐름이 일부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것만 같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54.
자유 간접 화법은, 제3자의 시점에서 인물의 의식을 조망하는 방식인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것은 독자가 허구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장치로, 사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이란, 일반적으로 1인칭과 3인칭을 혼동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자유 간접 화법은 비단 문학 기법에 머물지 않고, 초주관성을 구현하는 주요 장치가 된다. 이것 없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P. 58.
일시적 특징들은 시간의 점유와 관련 있고, 자유 간접 화법은 그 점유의 주체와 관련 있다. 일시적 특징들이 없으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자유 간접 화법이 없으면 시간은 공허해진다. 일시적 특징들은 창작의 대상이고, 자유 간접 화법은 즉흥성의 대상이다.
P. 82.
바라모는 이 말을 들으며, 이것이야말로 밀수꾼 특유의 논리라고 생각했다. 밀수꾼이란 국가라는 개념을 정언 명령으로 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P. 110.
만약 어떤 작품이 혁신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면, 그 공로는 작품 자체에서가 아니라, 그 작품을 탄생시킨 역사적 배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새로운 결과물은 그 원인이 된 과거마저 새롭게 탈바꿈시키며,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우리가 이러한 새로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예술의 기원을 밝히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실재이자, 동시에 언제나 존재해 왔던 모든 것의 실재가 된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직접 가서 자기 눈으로 확인해 보면 된다.

[링크][책] 바라모 – 세사르 아이라 (교보문고)
[링크][문학] 올빼미의 낮 – 레오나르도 샤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