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나? – 페터 플람, 이창남 옮김, 민음사, 2025.
우리는 모두 쓸데없이 부정적인 기억과 싸우고 있는 것 아닐까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나를 단정하고 가두는 부정적인 기억이 아니라, 나다움을 펼칠 수 있는 곳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일지도 모르니까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억
“나”는 살아 있을까요, 죽었을까요? 살았다면 나는 부유한 의사 한스일까요, 가난한 빌헬름일까요?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로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간접 경험도 경험일까요, 아니면 직접 경험만 경험일까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의지일까요, 기억일까요?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은 기억에 근거한 것일까요, 경험에 근거한 것일까요? 기억은 경험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기억은 “나”와 얼마나 다른가요? 기억의 시작은 입학 이후인가요, 그 이전인가요?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요? 터무니 없는 소리라며 살짝 고개를 모로 꼬게 만드는 이 작품의 설정은, 생각할수록 과장은 있어도 그 안의 진실성에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나와 나 사이의 간극
MBTI로 말하자면, 저는 I에 해당합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도 있습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 때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친한 사람이 출마했다는 이유로 강의실을 돌며 지지 유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E를 피하기엔 극도로 외향적인 면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성당 활동을 열심히 했던 저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제가 지금도 성당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예상과는 다르게, 현재 저의 일상에서 신앙 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와인과 커피에 관심을 가지며 모임을 하거나 학원을 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은 관심이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대단한 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시간의 풍화작용에 깎여 나갑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험 앞에서라면 더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경험 이전의 “나”와는 단절된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한스인지 빌헬름인지 모를 화자 “나”에 조금씩 몰입하게 됩니다.
쓸데없이 부정적인 기억과의 싸움
과도한 겸손이나 스스로에 대한 저평가는 자아를 가두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비대해진 자아를 가진 인물들을더 자주 마주치기는 합니다.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신하며 쓸데없이 과감하게 운전하는 운전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스로의 평가에 가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합니다. 합리적 평가의 탈을 쓴 스스로에 대한 평가절하가 기억에 남아 우리 스스로를 가둘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에 남는 부정적 평가, 상처 주는 말들이 남긴 부정적 기억이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너무 많은 가중치를 부여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정작 싸워야 하는 대상은 자신의 무가치함이 아니라 쓸데없이 부정적인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책 속 문장들]
P. 1.
내가 아닙니다, 재판장님, 죽은 이가 나의 입으로 말합니다. 여기 서 있는 건 내가 아니고, 들어 올려지는 팔은 나의 팔이 아니고, 하얗게 세어 버린 건 나의 머리카락이 아니며, 내가 저지른 일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P. 35.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는 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창백합니다, 그녀의 입은 웃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그녀는 농담을 던지고 끝도 없이 실없는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녀는 거기에 없습니다, 웃고 있는 건 단지 입입니다, 그녀의 눈은 커진 채, 심각하고 놀란 빛입니다, 그리고 그 하얀 이마 뒤에 작은 영혼은 아픕니다, 수천 번의 상처에서 피를 흘립니다.
P. 153.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내가 남긴 발자국들은 사라집니다, 뒤따르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지나온 자리는 오직 고요만 감돕니다, 밧줄이 끊어져 바닥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나는 떠다닙니다, 이리저리 표류합니다,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더 찾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안식할 땅, 나를 평화로 덮어 줄 흙을 원할 뿐입니다.

[링크]
[링크][책] 나? – 페터 플람 (교보문고)
[링크][문학] 금색야차 – 오자키 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