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이지수 옮김, 리프, 2025.
전문가가 아닌데 전문가로 부르다 보니 전문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비전문가 같은 전문가들의 아무말 대잔치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AI 시대의 할루시네이션 다루는 데에 급급하다 보니, 주인공인 괴테 전문가 도이치의 의문의 인용구 찾기 노력이 더 소설스럽게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전문가 (아님)
전문가 호칭이 꽤 널리 쓰이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자타공인” 전문가들에게만 전문가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내 주위에서 가장” 전문가들에게 전문가 호칭을 붙이는 데에 별 거부감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전문가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회사에서도 어떤 분이 전문가가 아닌 것이 명백해도 전문가로 부르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책임감 부여, 주인의식 주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의도는 알지 못합니다.
아무 말 대잔치의 시대
권위가 사라지자 아무 말 대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권위자에 대한 공격과 권위에 대한 부정이 시작되자 아무도 전문가라는 성배를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일단 전문가, 권위자가 되면 도이치처럼 말 한 마디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문 분야에 있어서 현황 판단과 대응 방안 제시가 적절하더라도 개인적인 선택과 맞물려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퇴임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사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 두 가지가 우리 경제의 문제라는 것이 대단한 비밀도 아닙니다. 게다가 그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고, 한국은행 총재 업무 중에 접한 경제 지표에 입각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발언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자녀를 어떻게 교육했는지, 그리고 부동산을 얼마나 보유했는지는 그의 공적 판단과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정말 그의 공적 판단이 국가 이익과 배치되는 개인적 이익 추구였는지가 의문이라면 최소한이라도 근거를 갖고 제시한 후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가 임기 동안에 최선을 다해 임해서 큰 과오없이 퇴임하는 데에도 막연한 음모론으로 비난한다면, 앞으로 다른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임기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싶어 할까요? 카뮈 번역에 있어서 익명으로 김화영 교수 번역본의 오류를 지적하다가 오히려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이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내려진 기억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집니다.
어차피 선택은 셀프
결국 돌고 돌아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옵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각각 불만이지만, 전문가들에게도 애로사항은 있습니다. 예컨대, 수능 강의를 하는 이지영님 채널에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님과 나눈 이야기 중에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에서는 교과서 내용 위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최신 과학 이론을 언급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수험생들 대상 컨텐츠에서 최신 과학 이론을 언급하면 이를 토대로 교과서 기준 문제를 풀다가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똑같은 전문가가 하는 말도 그 컨텐츠의 대상 청중이 수험생인지 일반인인지를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차피 요즘은 AI를 조금 더 세심하게 대하는 게 더 관건일 수도 있습니다. AI의 할루시네이션이나 아첨하는 경향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할 뿐, 이미 특정 전문가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향은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서 나오는 도이치가 의문의 인용구절을 찾아 자신의 지인들에게 요청하고, 독일로 직접 날아가기도 하는 이야기가 더 소설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링크][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교보문고)
[링크][문학]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