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민음북클럽 에디션] 홍계월전 – 작자미상, 류준경 풀어 옮김, 민음사, 2026.
영웅은 상식이 통하는 세계에서 탄생합니다. 능력보다 기득권이 커 보이면 풍자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확실하게 도움을 주고 표표히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도사 캐릭터에 눈길이 갑니다.
영웅 탄생의 전제: 상식이 통하는 세계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식이 통하는 세계여야 합니다. 사람 셋만 모여도 거기에는 서열이 존재하고, 사람의 무리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보다 악습이 생겨 굳어지는 것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홍계월이 활약하는 시대 배경에는 인재를 중시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오나라, 초나라 등 제후국들이 서로 다투고 있기 때문에, 인재 등용 실패가 국가의 흥망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등장인물 중에는 보국을 제외하고는 사리에 밝은 분들입니다. 무엇이 예의와 법도와 사리에 맞는 일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한 빌런은 보국인 것만 같습니다.
충고와 풍자의 대상: 능력보다 큰 기득권 수혜자
우리의 약한(?) 빌런 보국은 부모에게는 충고를 듣고, 천자와 계월에게는 일종의 놀림의 대상이 됩니다. 보국에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어쩌면 그의 능력보다 기득권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에게는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작품 내에서는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무리한 도전을 하다가 군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을 뻔 하고, 자신보다 벼슬도 무력(!)도 높은 부인을 맞으면서도 애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구전 소설에서는 능력에 비해 기득권에 의한 수혜가 큰 사람일수록 풍자하기에 걸맞은 것 같습니다.
조력자의 조건: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존재
여러 조력자 중에 도사가 눈에 띕니다. 도사는 주인공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주인공 의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주인공도 아니고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볼 수도 없는 도사는 그저 스쳐가는 주변 인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배경을 현실로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홍계월전의 도사처럼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에 바빠 허둥거리는 우리네 일상을 고려하면, 진정한 인생의 승자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도사의 시점에서는 자신이 홍계월을 존재하게 한 일종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끝내고 깔끔하게 떠나는 모습은 아무나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 속 문장들]
P. 119.
보국이 전령의 내용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여 부모께 여쭈었다.
“계월이 또 소자를 중군장으로 부리려 하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여공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내가 너에게 무엇이라 일렀느냐? 계월을 괄시하다가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어찌 잘못이라 하겠느냐? 나랏일이 무엇보다 중하니 어쩔 수 없느니라.”
하고 빨리 가기를 재촉하였다. 보국이 할 수 없어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진문에 나아가 원수 앞에 엎드렸다.
P. 117.
평국이 고함치며 달려들어 보국의 창검을 빼앗고, 보국의 멱살을 잡아 공중에 치켜들고 천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때 보국이 평국의 손에 매달려 오면서 원수를 부르며 소리 질렀다.
“평국은 어디 가서 보국이 죽는 줄을 모르는가?”
이처럼 울면서 소리 지르니, 그 소리로 진중이 들썩였다. 원수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평국에게 잡혀 매달려 오면서, 무슨 일로 평국을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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