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자연스럽다는 말 – 이수지, 사이언스북스, 2025.
편견과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지 않다’거나 ‘자연스럽다’면서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지만, 그 ‘자연주의’는 ‘과학주의’와 반드시 동의어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편견을 강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복기와 반성조차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해내야 하는 것만 같습니다.
편견과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
자연스럽다는 말을 스스로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가 반드시 자연스러운지는 의문을 가져볼만 합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의 편견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주장하는 사람의 학식이나 권위의 위력에서 자유롭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 각자는 자신의 입장이 있고, 결코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거칠게 끌어다 근거로 사용하는 ‘자연’이 과연 ‘과학’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던집니다. 그러고 보면, 과학이 많은 것을 ‘모른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방향일 뿐
진화가 선이고 덜 진화된 것은 악일까요? 저자는 진화에는 방향만 있을 뿐, 더 좋고 나쁨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두 귀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적의 소리로부터 덜 민감하도록 진화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귀를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덜 진화해서 나쁜 것이고, 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진화가 되어 좋은 것일까요?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시간이 지나 좋아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경제와 시민 개개인의 삶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어렵게 살아도 이웃 간의 정을 그리워 하니까요.
달리면서도 생각해야 하는 이유
이제 우리는 바쁘게 살면서도 틈틈이 치열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숙고와 사색의 시간을 길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다 뭔가 잘못되는 것 같으면 담배 타임이나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동료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반론을 제기하기는 커녕 “아첨”하기조차 쉬운 AI와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겁니다. 예전에는 트랙 위에서는 열심히 달려서 일단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 그에 대한 복기와 반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간 결승점 같은 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은 잠들어도 AI의 활동은 잠들지 않고, 기술 패권의 향방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복기를 뒤로 미루다간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틈틈이 꾸준하게 자신의 편견이 반영된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 속 문장들]
P. 25.
결국 자연주의의 오류는 어떤 자연 현상이 좋고 나쁨의 성질 을 얻는 과정에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인간 자신의 가치 판단이 선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마치 자연이 먼저 존재하고 그 로부터 가치가 도출되는 양 생각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에서 답을 구하기 이전에 자연에 투사되고 있 는 나의 가치 체계가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할 과제가 주어진다.
P.63.
어쩌면 가장 유명한 과학 삽화 가운데 하나일 「진보의 행진 (March of Progress)」은 진화가 사람이 되기 위한 진보의 과정이라는 대중적 믿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왼쪽 끝에는 구부정하고 털이 많으며 앞발의 손가락 관절로 땅을 딛고 걷는 유인원이 있고, 그 다음에는 비슷하지만 점점 두 다리로 걷는 개체가 나오다 가, 오른쪽 끝에는 털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단정히 다듬은 남성이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고인류가 남성적 특징으로 묘사된 것, 심지어 인간으로 오면서 피부색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진화가 진보이고 백인 남성이 진보의 귀결이라는 뜻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P. 96.
후속 연구 결과들은 이전의 인형 실험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인형 실험에 따르면 새끼 원숭이에게는 24시간 늘 함께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존재가 필요하다. 후속 연구에 따르면 그 존재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었고, 새끼는 경험을 통해 ‘사랑하는 법’ 을 배워 나갈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도 천 인형 실험 결과만이 선택적으로 인용되며 생물학적 엄마의 역할을 강조하는 애착 이론이 대중화되는 데 기여한 것은,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던 당시 상황을 부정적으로 여긴 정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P. 104.
여기에는 고고학 연구도 기여했다. 2020년,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때 쓰는 매우 정교한 도구들을 분석한 결과가 발표되 었다.’ 연구를 이끈 랜달 하스(Randall Haas) 교수는 2018년 페루의 어느 매장지에서 그 도구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당연히 남자의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도구와 함께 매장된 사람 뼈는 여성, 그것도 청소년기 여성의 것이었다.
P. 126.
사람과 계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인원을 비교의 준거로 삼는 다면 보노보도 함께 고려해야 함에도, 현재 인간 본성의 서사는 ‘암컷 주도의 동성애적 행동이 흔한’ 보노보보다는 ‘수컷 주도의 폭력적 행동이 두드러지는’ 침팬지를 중심으로 씌어지고 있다. 그 점에서 인간 본성의 서사를 쓰는 일은 누가 무엇을 믿고 싶은 지에 따라 증거를 맞추는 확증 편향의 위험을 늘 안고 있다.
P. 184.
여기서 진화는 진보와 혼동되고 있다. 진화는 생물학적 종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그 변화가 축적되는 과정이므로 그 자체에 방향성이 없다. 종의 진화는 더 나아지는 게 아니다. 단지 자연 선택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때로는 유전적 부동과 같은 우연의 힘으로 집단의 유전적 구성이 변하면서 이전 세대와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개선의 의미를 함축한 진보는 ‘바람직함’에 대한 주관적 정의를 바탕으로 분명한 방향성을 띤다. 나아진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인가?

[링크][책] 자연스럽다는 말 – 이수지
[링크][책] AI가 선택하는 브랜드의 비밀 – 김용석,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