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크리스 나이바우어, 김윤종 옮김, 클랩북스, 2026.
뇌를 조종하는 것이 나인가, 나를 조종하는 것이 뇌인가.
뇌과학으로 들어가서 동양철학으로 나오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뇌와 동양철학일까요? 처음에는 좌뇌와 우뇌 이야기로 빌드업을 쌓았지만, 종착역은 동양철학인 것만 같습니다. 좌뇌와 언어가 인지의 많은 부분에 관여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지향점은 동양철학이라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분류하고 분석하는 등의 좌뇌적인 활동만으로는 지식과 지혜의 많은 부분을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해석 장치의 오류
저자는 좌뇌가 패턴을 잘못 찾아내는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사람과 쥐에게 시행한 실험을 예로 들면서 (106면), 사람의 경우에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있지도 않은 패턴을 찾아 헤맨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완벽한 예”라고 합니다. 하지만, 쥐에 대해 실험하면서 사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 실험은 다음 불빛이 위 아래 중 어디로 비춰질지에 대한 예측 실험이었습니다. 피험자 쥐가 피험자 사람과 동일하게 실험에 대해 이해한 후 형성된 행동과 결과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실험을 설계한 분들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결과를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요? (이 경우는 실험자 분들의 해석 장치에 오류가 발생한 것일까요?)
물이냐 컵이냐
자아라는 게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저와 맞는 사람, 맞는 공동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다른 모든 이에게 맞추는 것이 사회 생활이라고 착각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물처럼 이 모양에는 이렇게, 저 모양에는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이 제각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확정할 수는 없어도 윤곽만이라도 드러내야 다른 사람들도 저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노력이 꽤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일 중의 한 가지입니다. 여전히 저는 저라는 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해 가네
언젠가 새학년이 될 때 조금 더 외향적으로 지내자고 결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아라는 게 있다면 약간의 변주를 주거나 기어 변속 정도에 해당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렸던 그때처럼 변형을 주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그 당시의 자아가 어느 정도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뇌에서 따로 방을 하나 갖고 있거나, 결코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성향들이 만나는 교차점은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는 저의 좌뇌가 합리성이라는 멋진 이름의 이상하게 생긴 칼을 함부로 휘둘렀다면, 이제 그런 한계선들을 조금은 벗어나서 한 뼘이라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속 문장들]
P. 64.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라는 게 있음을 찾아내는 것도, 똑같은 실수를 날마다 저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P. 106.
그 정도면 높은 수치가 아닌가 싶겠지만 같은 실험을 쥐에게 진행하자 80퍼센트의 정확도가 나타났다. 쥐는 골치 아프게 패턴 따위는 찾지 않는다. 이것은 해석 장치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있지도 않은 패턴을 찾아 헤맨다는 것을 증명하는 완벽한 예다.

[링크][책]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크리스 나이바우어 (교보문고)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크리스 나이바우어 – 교보문고
[링크][과학] 디어 올리버 – 수전 배리, 올리버 색스